'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삶' 홍세화 선생이 몇년째 주장하고 있는 한국식
자본주의의 풍경이다. 가슴뛰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건 뭔가 잘못돌아가는 건데. 참을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만 돌아온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은가.
자격증 하나 받으면 더 가슴뛰는 일들을 할 수 있을거라는 아무런 근거
없는 생각을 환상을 망상을 믿고, '일단학위'라는 네글자를 머리에 박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탈출을 꿈꾸었으나, 나와 동일한 것을 싫어하는 세명의 선배에게 참고 견디고 학위를 받으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또는, 변화하는 것의 두려움을 그런 말로 넘겨버리고자 한 걸까? '사랑하지 않으나, 참고 견딜 수는 있겠지.' 그건 생각이 아니다. 이성이 아니다. 판단이 아니다. 그저 신념, 이데올로기, 환상일 뿐. 내가 들은 말들에는 책임이 없다. 내가 한 행동에만 책임이 있을 뿐이지.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과학은 쉽게 길을 열어보이지
않는다. 어렵고 힘들고 짜증나는 것들을 살살 달래고, 꼬시고, 뚫고, 바숴야 하는데,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걸 어떻게 지나가겠나. 연애란 원래 그런것이다. 지구상에 어떤 연애도,
단 한번도 그렇지 않은 적은 없다.
내년 여름. 아마도
또 쫓기듯이 졸업하고 쫓기듯이 학위를 받게 될거다. 시간은 어찌되었든 흘러가고, 어설픈
연애의 부산물은 지질한 추억들을 장난스런 논문으로 넘겨줄거다.
아마도 겨우겨우 받아주는
사람에게로 갈거고, 내 논문의 방향은 나를 내가 생각하지 않은 곳에 데려다
놓을 거다. 욕심을 버리면 그 삶도 나쁘지만은 않겠지.
하지만,
그걸로 정말 된건가?
조금은 더 과감하게, 조금은 더 무모하게.
심장이 뛰지 않는데, 삶이라고 부를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