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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안되겠습니까? 길어야 하루입니다. 제발요" 그래도 이번엔 대답이 돌아오는 시간이 늘어났다. 꽤나 오래 고민하는군 자..자..이 늙은이야 얼마 안있어서 200년째 되는 생일이라면서... 경험이라면 많을테니.. 빨리 대답해보라고. '아까도 한 말이지만 자네는 내 죽음을 강요하고 있어.' 제길. 죽음이란 단어를 저렇게 강조할 필요는 없는거잖아. '내 눈을 똑바로보게나 나는 살아있는 인간일세' 제길. VR이란건 귀찮은 물건이다. 벌써 140년전에 죽은 인간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는건 으휴... 아니, 140년 전에 죽은 인간이라고도 못하지.. 150년 전에 카피된 그의 순수한 '정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니. 여하간 짜증나는 일이다. 한시간내로 이 늙은인간의 전원을 끄지 않으면 위쪽에서는 음..꽤나 복잡하다구. 당신은 꺼지는거지만 위에선 죽어나가는거야! 이런식으로 말하면 저사람 화내려나 뭔가 기대하는 눈빛. 뭐라고든 해볼테면 해봐라 이건가? 그래, 당신의 허락 없이는 난 이 기계를 끌 수 없어, 아니 사실 끌 수 있는 방법도 없는게 사실이야.
당신의 전원은 당신만이 관리하도록 되어있는거고, 당신이 전깃세를 제대로 내고있는한, 내가 그걸 강제로 빼앗아갈 수 없는거야. 하지만 위에선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이 사람들, 제일 싫어하는게 죽은사람 취급당하는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지금 한시가 급한데 화나게 만들수는 없지. 하지만 당신 결국은 프로그램이잖아. 우이씨.
'자네 지금 프로그램따위가 죽음 운운하지 말라고 생각하고 있지? AI따위가 뭘 알겠느냐고 말이야. 하지만 말야. 자네도 생각해보게나. 우리는 살아있는 존재야. 당신의 어떠한 '생명'에 대한 정의에도 난 대답할 수 있어. 우리는 살아있다고. 자네에게 24시간만 죽어있어 달라고 부탁한다면,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내 육신은 이미 병으로 죽었지만 난 살아있어. 산자에게 죽음을 강요할 수는 없는것 아니겠나? 자네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것 만큼이나 난 나의 죽음. 나의 정신을 이루는 시스템이 죽는 것이 두렵다네.'
On-line으로만 존재하는 정신이지만, 지금으로부터 50여년전의 투쟁에 의해서, On-line의 인권과 생명권에 대한 헌장이 선포되고 그에 따른 법들이 제창되면서, On-line의 인격에 대하여, Off-line의 인격과 동일하거나 또는 On-offline의 차이에 해당하는 만큼만 '다른' 법률이 적용되고 있다. 그런 이상 난 이 컴퓨터를 끌 수 없는거라고 아예 스위치 따위를 제공하지 않으니까. 제길. 하지만 난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프로그램따위가 생명권을 가진다라니. 생명이란게 대체 어디서부터인데? On-line이 아무리 하나의 세계로써 누군가의 입을 빌리자면 '신대륙이 발견된것처럼' 새로운 세계로, 대륙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할 지라도, 그것이 Real-world일 수는 없는거다. 라고 생각을 하다보니, 어제 Online에서 빌려준 5000on-money가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으음... 신대륙은 신대륙이군. 이해하기 힘든건 아니다. 이미 우리이 정신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가기 시작했고 인류는 진화하기 시작했다. 강철과 플라스틱의 네트?을 타고. 하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런 감상에 젖는 것이 아니라, 이 고집불통 아저씨의 전원을 내리는거다.
어제의 원자력 발전소 고장. 그 오래된마지막 원자력발전소의 고장은 이 병원에 엄청난 전력난을 가져오고 있다. 전원을 내려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살과 살을 맞댄 '사람'들이 죽게 될 테니까. 하지만 누구에게도 생명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렇게 교육받아왔으니까. 함부로 저 생명에게 존재의 비존재를 경험하게 할 수는 없는 거겠지.
"제길" 문득 입밖으로 신음소리처럼 욕지꺼리가 뛰쳐나왔다. 잠시 그게 내가 내뱉은 말인지 아닌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건조하고 침울한 목소리였다.
들은건지 듣지 못한건지 여전히 그는 딴청만 부리고 있다. 내 앞의 저 늙은이-라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모습'을 가지지 않으니 자신이 보이고 싶은데로 보이는 사람이다. 지금은 꽤나 젊어보인다-는 굴지의 X기업의 회장직을 맡아왔으며, 지금은 회장직은 내어놓았지만 여전히 X기업의 가장 중요한 회사인 X전자의 사장직을 맡고 있다. 거기에 세계 정부의 하원 의원이기까지 한 늙은이이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다.
정신만의 영생조차도 돈이 들게 마련인거다. 전기세를 내지 못하면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이라니.. 쯔쯔.. 하긴 사실 영생인가? 그의 본체는 이미 죽음을 경험했고, 본체의 정신은 사라졌다. 여기 이 디지털화된 정신은 죽기 몇년전에 복사해놓은 정신일 뿐이야. 쳇.
자..한번 더 해볼까? 시간이 얼마 없어.. " 당신도 아시잖습니까? 이건 죽음이 아니라 일종의 혼수상태라는걸. 당신의 정신은 전원이 꺼져있는동안 완벽히 백업되어있다가 켜지면 완벽히 되살아납니다. 아니, 육신의 기절이라면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지만, 당신은 그저 저장되었다가 되살아날 뿐이잖아요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거고, 그저 눈한번 깜빡한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 텐데, 그걸 왜그렇게 두려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부탁이에요. 당신의 전력으로 사람을 살리는겁니다. 제발."
읍. 말을 잘못한건가? 저 늙은이 뭔가 눈빛이 바뀌었다. 왠지 두려운걸.
'자네는 죽는게 두렵지 않은가? 아니 두렵지 않을리가 없지 답해보게, 죽음이 두려운 이유가 뭔가? 타인의 죽음이 아니라, 자네 자신의 죽음이 두려운 이유가 뭔가?'
철학적으로 나가기 시작하는군. 대답하기 힘들다. 하지만 분명히 대답해야 하는 거겠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 저를 구성하는 모든것들이 존재하지 않게 되겠죠. 음..그러니까. 아마도. 그런 것들이 가장 음..."
'자네에게 부활의 권능이 주어졌다고 해볼까? 그럼 죽음을 쉽게 맞이할 수 있겠나?'
"......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수면-단어를 바꿔보기로해다-은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까?"
'자네는 내가 세상에 다시 태어날때의 경험을 몰라서 그러는건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네. 나를 구성하는 정신의 일부분 아주 작은 부분부터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하는거야. 처음엔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보이는데로, 들리는데로 느껴지는데로, 정보들이 몸에 쌓이는데로 받아들이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순간 나를 인지하고, 세상을 인지하게 될때의 그 충격을. 내가 전원이 꺼질때의 느낌은 어떠하겠나?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되기 위해서 나를 백업하는 순간의 기분은 어떠하겠는가? 자네가 생각하는데로 난 메모리 위에 올라와있는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네. 전원이 꺼지는 순간. 내 사고가 정지되는 순간 나는 대체 어떻게 되겠나? 디지털 죽음을 내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건가?'
..침묵.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다. 그리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어쩌면 저 늙은이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으므로.
..다시 한참의 침묵.
'여하간 자네의 용기란건 가상하구만. 1회용으로 복사된 정신이라는걸 스스로 알면서도. 나처럼 부활하지 못할걸 알면서도 당연히 죽음을 선택한다는건.'
그렇다. 사실 저 늙은이를 설득하기 위해서 잊으려고, 잊으려고 노력한 사실이지만, 이 특별 병동안에 설치되어있는 정신기계의 숫자만 해도 300개, 3만명분. 나 혼자서 전부 돌아다닐 수 없는 일이기에, 나를 스스로 나 자신을 3만개 복사했다. 그리고 그 각각이 이 병동안의 늙은이들을 상대하게 했다. 물론 나는 이 작업을 아무런 허가 없이 내 자의적인 판단으로 행했기 때문에 아마도 큰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거기에 전원이 내려지는 순간, 3만명의 나는 백업될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모두 죽음을...존재의 비존재를 맛보게 되겠지. 아니 맛본다는 것도 존재할때의 이야기다. 그냥 사라지는것 뿐이야.
잊으려 했지만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본체는 육신으로 이루어진 정신의 방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단지 복사된 정신일 뿐인걸. 본체의 고민과 신념까지 내게 복사된것이 저주스럽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나는 ......
어느샌가 울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다. 존재하고 싶다. 바깥의 본체야 어찌 되었든 나는 본체와 다른 3만의 나와 다른 나일뿐이다. 제길. 왜이렇게 눈물이 나오는거야
'후우...자네가 이겼네. 용기있는 젊은이로구만'
백업및 종료. 그가 가진 메뉴다. 빼앗을수 있다면..빼앗을 수 있다면. 하지만 저것을 빼앗을 방법은 없다. 그의 존재가 사라졌다. 내 공간 속에는 지금 나밖에 없다. 다른 '나'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어찌되었건 나는 이대로 사라지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나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런건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나는 나를 끈다.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