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해당되는 글 4

  1. 2007/06/19 쑥오이 먼지 투성이의 푸른 종이 (1)
  2. 2007/05/07 쑥오이 껍데기는 가라 (0)
  3. 2006/12/08 쑥오이 新綠 (0)
  4. 2006/11/06 쑥오이 신부 (0)
먼지 투성이의 푸른 종이

기 형 도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여섯 개의 줄이 모두 끊어져 나는 오래 전부터 그 기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나의 슬픔과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 부드러운 음자리로 배열해주던'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기타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나는 경악한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힘센 기억들을 품고 있다. 기타소리가 멎으면 더듬더듬 나는 양초를 찾는다. 그렇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이상한 연주를 들으면서 어떨 때는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도 있다.

먼지 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 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시집,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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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분류없음 | 2007/05/07 15:55 | 쑥오이
껍데기는 가라

          신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와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태그 : 껍데기,

新綠

분류없음 | 2006/12/08 12:53 | 쑥오이
新綠
  -서정주

어이 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 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제 꽃닢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번 나--ㄹ 에워싸는데

못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허며
붉은 꽃닢은 떨어져 나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나려

新羅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新羅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풀밭에 바람속에 떨어져 나려

올해도 내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신부

즐거운 생활/시를 읽어요 | 2006/11/06 17:28 | 쑥오이
신부(新婦)
   서정주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알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