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에 해당되는 글 2

  1. 2006/11/01 쑥오이 무엇이 나의 아나키즘인가. (0)
  2. 2006/09/08 쑥오이 종말. (0)


잊고 있던 사실이지만, 내 이상은 아나키즘에 가장 가깝다.
내 삶이야 아나키즘에 아주 약간 경도된 대한민국/교육받은/남성/막내아들의
표준적인 삶에 굉장히 가깝지만.
어쨌든, 내 이상은 아나키즘이다.

백명의 아나키에게 물어보면 백명 모두 다른 대답을 하겠지만,
누군가가 아나키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결정하는 가장 주요한 대답은,
권위에 대한  인정 여부이다.

아나키스트는 권위를 부정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인간과 다른 인간의 만남에 있어서
인간과 인간으로써의 만남을 가장 중요시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아나키스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한 인간이 입고 있는 옷, 그들의 직위, 계급, 신분, 성별, 종교등의
껍데기에 의해서, 두 사람간에 권력이나 선입견이 발생하는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두 사람 모두가 인간으로써 서로를 대할 자유를,
그리고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 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이 원하는 정부의/사회의/경제의 모습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형태로 뻗어 나가게 마련인 것이다.

내가 가진 권력들, 내가 가지고 있는 권위들을 털어내는 것이 내가 한 때 진심으로
원했던 일이었고,
내가 경험할 권력들, 내가 경험할 권위들에 당당히 주눅들지 않는게 내가 진심으로
원했던 삶이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든, 사람들 모두를 편견 없는 눈으로 대하기를 원했고
그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어떤 인간들, 어떠한 모습들이더라도,
서로를 인간과 인간으로 마주하는 세상이 오면,
그것이 이상적인 세상이 될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방법은 오직 대화 뿐이라고 믿는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것은 대화 뿐이라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고 또 오해해도,
얘기하고 얘기하고 얘기하고 얘기하다보면, 언젠가 서로를 외롭지 않게 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내가 존재하던 세상 하나가 부숴지는것을 지켜봐야 했다.
대화가 부족했다고, 서로에 대한 오해로 가득찼다고,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거라고 믿어왔던 것 같다.

어설프지만, 이상은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모두가 나를 미워한다고 느낄 때 조차도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거다.

근래에는, 잘 모르겠다.
무슨 방법을 써도, 꼬일 것은 꼬이고, 마주칠 것은 마주치는게 아닐까.
인간의 방법, 인간의 생각, 인간의 대화란 그 부족함 자체가 본질이 아닐까.
속고 속이는 방법을 개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진화한 두뇌를 가지는 이상,
결국 진실한 대화란 불가능한게 인간인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건 그놈의 현실. 언제나 지겹게 들어야 했던, 현실 인지도 모른다.
이상이란 이상으로 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 나의 문제야 아나키로 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제대로 내 일들을 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내 밥벌이를 제대로 하고 있느냐이지만.





종말.

슬기로운 생활 | 2006/09/08 23:39 | 쑥오이
   종말이란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왔다.
종말의 시작은 컴퓨터였고, 종말의 끝도 컴퓨터였다.
아니, 컴퓨터라 불리우던 물건이었다.

처음의 종말은 누군가가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AI를 만들어 버린데에서 시작되었다.
AI들이 조금씩 세상을 활개치고 다니고,
인간들에게만 존재한다고 믿었건 개념들,
사랑, 종교, 믿음, 고차원적 사고등등이
AI들에게 조금씩 복사되어갔고,
AI는 점점 더 인간과 동일해져만 갔다.

이 시절에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의 존재를 애써 긍정하기 위해
이전보다 몇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어느정도 해 나갈 수 있었다.
이들 AI에게는 사람들이 가진 특권, 죽음이 없었기에.
지능이 복사 되어버린 시대에 사람들은 오히려 더욱 열심히 종교로 파고 들어갔고,
영생을 믿고자 했고, 내세를 믿고자 했다.

그때였다.
죽음까지 시뮬레이션한 새로운 AI가 등장한 것은.
번식이 가능한 AI가 등장한 것은.
그것은 더이상 AI가 아니었다.
인간들은 결국 인간의 영혼을 만들어냈고,
인간의 영혼을 죽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들은 더이상 신을 믿을 수 없었고,
더이상 영혼의 존재를 믿을 수 없었다.
내세를 믿을 수 없었고,
존재를 믿을 수 없었다.
신이 있다면, 영혼을 만들어버린 자신들이 신이었으니.

그리고 종말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극도로 죽음을 두려워 하기 시작했다.
안전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속에서
전쟁도, 파괴도, 어떤 거친 활동들도 일어나지 않은채,
너무나도 조용한 평화만이, 평화만이 계속되었다.

모든 생명들의 숙명은 혼돈을 그 한손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혼돈을 버리고 안전만을 찾아간 인간들은,
조금씩 또 조금씩 사라져갔다.
종말은, 누군가가 예언했던 것처럼 거대한 사건과 함께 오지 않았다.
평화롭게 인간은 조금씩 종말을 맞고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