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고 있던 사실이지만, 내 이상은 아나키즘에 가장 가깝다.
내 삶이야 아나키즘에 아주 약간 경도된 대한민국/교육받은/남성/막내아들의
표준적인 삶에 굉장히 가깝지만.
어쨌든, 내 이상은 아나키즘이다.
백명의 아나키에게 물어보면 백명 모두 다른 대답을 하겠지만,
누군가가 아나키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결정하는 가장 주요한 대답은,
권위에 대한 인정 여부이다.
아나키스트는 권위를 부정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한 인간과 다른 인간의 만남에 있어서
인간과 인간으로써의 만남을 가장 중요시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아나키스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한 인간이 입고 있는 옷, 그들의 직위, 계급, 신분, 성별, 종교등의
껍데기에 의해서, 두 사람간에 권력이나 선입견이 발생하는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두 사람 모두가 인간으로써 서로를 대할 자유를,
그리고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 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이 원하는 정부의/사회의/경제의 모습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형태로 뻗어 나가게 마련인 것이다.
내가 가진 권력들, 내가 가지고 있는 권위들을 털어내는 것이 내가 한 때 진심으로
원했던 일이었고,
내가 경험할 권력들, 내가 경험할 권위들에 당당히 주눅들지 않는게 내가 진심으로
원했던 삶이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든, 사람들 모두를 편견 없는 눈으로 대하기를 원했고
그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어떤 인간들, 어떠한 모습들이더라도,
서로를 인간과 인간으로 마주하는 세상이 오면,
그것이 이상적인 세상이 될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방법은 오직 대화 뿐이라고 믿는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것은 대화 뿐이라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고 또 오해해도,
얘기하고 얘기하고 얘기하고 얘기하다보면, 언젠가 서로를 외롭지 않게 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내가 존재하던 세상 하나가 부숴지는것을 지켜봐야 했다.
대화가 부족했다고, 서로에 대한 오해로 가득찼다고,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거라고 믿어왔던 것 같다.
어설프지만, 내 이상은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모두가 나를 미워한다고 느낄 때 조차도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거다.
근래에는, 잘 모르겠다.
무슨 방법을 써도, 꼬일 것은 꼬이고, 마주칠 것은 마주치는게 아닐까.
인간의 방법, 인간의 생각, 인간의 대화란 그 부족함 자체가 본질이 아닐까.
속고 속이는 방법을 개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진화한 두뇌를 가지는 이상,
결국 진실한 대화란 불가능한게 인간인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건 그놈의 현실. 언제나 지겹게 들어야 했던, 현실 인지도 모른다.
이상이란 이상으로 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 나의 문제야 아나키로 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제대로 내 일들을 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내 밥벌이를 제대로 하고 있느냐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