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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나의 관계에 대한,
그리고 우주에 대한
그것의 신비에 관한 어느 짜릿한 순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경험한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과
나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의 신비와
그것에 대한 경외심.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는
그것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그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신의 존재로 해석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존재의 존재로 해석한다.
믿음.
과학이란 어쨌든 결국 믿음이다.
종교역시 믿음이다.
인간의 존재에 의한 두 산물은
결국 외부 세계에 대한 강한 경외감을
외부로 표출하는 방법일 것이다.
과학은 믿음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그것이 그렇지 않다라고 주장하겠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이 우리가 관찰하고, 기술하는 형태의 내부적 구조와 법칙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과학의 정체이다.
논문과 저술들, 그리고 가설과 토론으로
'추상화되어' '세상의 모습을 반영' 하는것이
과학이고, 과학의 결과들이고, 기술들이다.
과학은 세상 자체가 아니고,
그러므로, 과학은 믿음의 결과이다.
내가 내놓은 가설을 자연이 따르고 있는게 아니라,
나의 가설은 자연이 따르고 있을 규칙의 모습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은 것 뿐이다.
과학은 믿음이다.
하지만, 그것은 'strong belief'-의심을 통한 믿음이다.
하나의 가설이 믿음이 되기까지의 극한까지의 의심과 의심을 통한 수정,
그리고 믿고 있는 사실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의심이
과학이다.
과학자들이 발전시켜온 모든 과학계의 구조는 그리고 방법론들은
이러한 '의심하는 법'들을 발전시켜온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것이 과학자들의 믿음의 특징이다.
종교 또한 믿음이다.
그리고, 한 영적인 존재로서-영혼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나는
종교의 존재를 환영한다.
영성-영혼에 의한 존재가 아닌-은 인간을 해방하고
인간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한 인간이 느끼고 경험해야 할 영적인-영혼에 의한 것이 아닌-경험은
그 사람이 물리적 공간에 의해서 발생한 영적 공간-영혼에 의한 것이 아닌-에서의
삶을 충만하게하고, 그 사람이 발전하게 한다.
하지만, 종교는 믿음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믿음이란 그 동전의 반대편에 의심이 존재해야 한다.
의심하지 않은 믿음을 진정한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한 결과 얻어진
한 조각의 믿음이 아니라면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다못해 예수라는 인간도 의심해야 했고, 고뇌해야 했는데,
그를 따르는 자들은 그보다 더욱 큰 의심이 필요한게 아닐까?
예수를 사랑한다면, 그를 숭배하기 이전에,
그의 행동과 그의 사상을 고민하고 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종교이지 않을까?
그러한 믿음의 존재가
내가 믿는 종교의 가치이고 종교의 존재 이유다.
인간의 영성-영혼의 존재에 의한게 아닌-을 발전시킬 것이다.
내가 공산주의를 비판한다면,
그것의 구현을 비판하는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신념과 철학이 없이 구현되어버린
스탈린과 김일성의 가짜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내가 종교를 비판한다면,
그것의 구현에 대한 비판이 될것이다.
의심을 허락하지 않는 종교지도자와,
다른 사람에게 '믿으면 의심할 필요가 없다'라는
의심 없는 믿음을 강요하는 그 방법에 대한 비판이 될 것이다.
내가 삶과 지구와 우주에 느꼈던 경외와 신비에 대해
누군가가 종교의 이름으로 그것을 표현하는것이
대체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그것이 종교라는 방식이어서 문제가 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난 누구보다도 종교적인 인간이라고 자인한다.
..종교라는것이 유일신또는 어떤 신적 '존재'를 숭배하는 형태만을 가리킨다면,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게 되겠지만,
인간의 영적 존재를 믿고(영혼에 의한 것이 아닌), 그것이 발전해 나가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난 종교적이다.
그리고 우주에 대한
그것의 신비에 관한 어느 짜릿한 순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경험한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과
나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의 신비와
그것에 대한 경외심.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는
그것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그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신의 존재로 해석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존재의 존재로 해석한다.
믿음.
과학이란 어쨌든 결국 믿음이다.
종교역시 믿음이다.
인간의 존재에 의한 두 산물은
결국 외부 세계에 대한 강한 경외감을
외부로 표출하는 방법일 것이다.
과학은 믿음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그것이 그렇지 않다라고 주장하겠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이 우리가 관찰하고, 기술하는 형태의 내부적 구조와 법칙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과학의 정체이다.
논문과 저술들, 그리고 가설과 토론으로
'추상화되어' '세상의 모습을 반영' 하는것이
과학이고, 과학의 결과들이고, 기술들이다.
과학은 세상 자체가 아니고,
그러므로, 과학은 믿음의 결과이다.
내가 내놓은 가설을 자연이 따르고 있는게 아니라,
나의 가설은 자연이 따르고 있을 규칙의 모습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은 것 뿐이다.
과학은 믿음이다.
하지만, 그것은 'strong belief'-의심을 통한 믿음이다.
하나의 가설이 믿음이 되기까지의 극한까지의 의심과 의심을 통한 수정,
그리고 믿고 있는 사실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의심이
과학이다.
과학자들이 발전시켜온 모든 과학계의 구조는 그리고 방법론들은
이러한 '의심하는 법'들을 발전시켜온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것이 과학자들의 믿음의 특징이다.
종교 또한 믿음이다.
그리고, 한 영적인 존재로서-영혼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나는
종교의 존재를 환영한다.
영성-영혼에 의한 존재가 아닌-은 인간을 해방하고
인간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한 인간이 느끼고 경험해야 할 영적인-영혼에 의한 것이 아닌-경험은
그 사람이 물리적 공간에 의해서 발생한 영적 공간-영혼에 의한 것이 아닌-에서의
삶을 충만하게하고, 그 사람이 발전하게 한다.
하지만, 종교는 믿음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믿음이란 그 동전의 반대편에 의심이 존재해야 한다.
의심하지 않은 믿음을 진정한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한 결과 얻어진
한 조각의 믿음이 아니라면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다못해 예수라는 인간도 의심해야 했고, 고뇌해야 했는데,
그를 따르는 자들은 그보다 더욱 큰 의심이 필요한게 아닐까?
예수를 사랑한다면, 그를 숭배하기 이전에,
그의 행동과 그의 사상을 고민하고 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종교이지 않을까?
그러한 믿음의 존재가
내가 믿는 종교의 가치이고 종교의 존재 이유다.
인간의 영성-영혼의 존재에 의한게 아닌-을 발전시킬 것이다.
내가 공산주의를 비판한다면,
그것의 구현을 비판하는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신념과 철학이 없이 구현되어버린
스탈린과 김일성의 가짜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내가 종교를 비판한다면,
그것의 구현에 대한 비판이 될것이다.
의심을 허락하지 않는 종교지도자와,
다른 사람에게 '믿으면 의심할 필요가 없다'라는
의심 없는 믿음을 강요하는 그 방법에 대한 비판이 될 것이다.
내가 삶과 지구와 우주에 느꼈던 경외와 신비에 대해
누군가가 종교의 이름으로 그것을 표현하는것이
대체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그것이 종교라는 방식이어서 문제가 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난 누구보다도 종교적인 인간이라고 자인한다.
..종교라는것이 유일신또는 어떤 신적 '존재'를 숭배하는 형태만을 가리킨다면,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게 되겠지만,
인간의 영적 존재를 믿고(영혼에 의한 것이 아닌), 그것이 발전해 나가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난 종교적이다.
사랑한다면,
비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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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 잠을 자다가
문득 몸의 한 구석이 불편했고,
누구나 그렇듯, 큰 병일지도 모른다는 자학적 망상을 하던 중이었다.
비 물질적인 영혼의 존재를 믿을 수 없었던 나로서는,
문득, 죽고나면, 내 정신이 활동을 멈추면,
나의 '존재'가 부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부터 그렇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
충격이었다.
큰 충격이었다.
울었다.
멍하니 혼자 울었다.
그것이 유일신을 믿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문득 몸의 한 구석이 불편했고,
누구나 그렇듯, 큰 병일지도 모른다는 자학적 망상을 하던 중이었다.
비 물질적인 영혼의 존재를 믿을 수 없었던 나로서는,
문득, 죽고나면, 내 정신이 활동을 멈추면,
나의 '존재'가 부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부터 그렇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
충격이었다.
큰 충격이었다.
울었다.
멍하니 혼자 울었다.
그것이 유일신을 믿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